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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고대 아테네는 프리덤팩토리였다

박경귀 | 2014.04.07 09:08 | 조회: 949 | 덧글보기(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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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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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아테네는 프리덤팩토리였다

문명의 진보는 기술의 발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유체계의 근본적인 변화로부터 시작된다. 한 시대의 융성과 쇠퇴를 좌우하는 것은 당대 인간들의 가치관과 행동양식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 문명을 꽃 피운 근간에는 분명 그들만의 특별한 사유체계와 행태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아테네인이 그리스 문명을 만개시킨 민주주의를 창안한 것도 도구의 발명처럼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게 아니다. 그 저변에는 오랫동안 아테네인들이 공유하고 추구한 공통의 가치가 바탕이 되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유(Eleftheria)'의 관념이 바로 그 핵심적 사유체계였다.

그리스를 여행하다보면 엘레프테리아 또는 엘레프테리아스로 불리는 광장이나 도로를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스인들에게 ’자유(Freedom)'의 관념은 수천 년 이어져 내려온 정신적 자산이자, 실생활의 작동원리 그 자체이다. 그 정신적 뿌리는 고대 아테네까지 닿아있다.

아테네인들의 ’자유'의 가치는 추상적 관념으로 취득된 게 아니다. 도시국가 내에서의 갈등과 투쟁의 과정에서, 그리고 나라의 존망을 걸었던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통해 절박하게 느끼며 단련되고 강화되어간 현실적인 관념이었다.

동방의 대제국 페르시아는 3차례에 걸쳐 그리스를 넘본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에게 '흙과 물’을 바치라고 요구했던 것이다. '흙과 물’을 봉헌한다는 것은 페르시아에 굴종하여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했다. 수많은 도시국가들이 페르시아의 '노예’가 되어갈 때 단연코 거부했던 국가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비롯한 몇몇 국가에 불과했다.

아테네인들과 스파르타인들은 페르시아의 굴욕적인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고 전쟁을 택했다. 엄청난 전력의 열세 속에서 페르시아 군대에 의해 3차례에 걸쳐 그리스의 대부분의 국토가 유린되고 약탈당했다. 하지만,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로 최종적으로 페르시아를 물리쳤다.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그 자유의 치열한 투쟁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역사>에 담았다. 페르시아 사령관 휘다르네스가 항복하라고 회유할 때 그리스의 장군들은 시민과 병사들에게 “자유민으로 남거나 아니면 노예, 그것도 탈주한 노예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을 늘 상기시키며 맞서 싸울 것을 독려했었던 것이다. 하여 그리스인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최고의 전략무기가 될 수 있었다. BC 480년 페르시아의 마지막 침략을 패퇴시킨 후 비로소 그리스의 융성기가 찾아왔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100년의 황금기는 이렇게 '자유’의 투쟁이 거름이 되어 기름진 토양 위에서 꽃필 수 있었던 것이다.

자유의 정신은 아테네 문명의 전반으로 확산된다. 개개인의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주주의’가 창안된다. 아테네 예술인들은 예술적 창의성을 발현하는 데 형식과 내용에 있어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았다. 장인들의 자유로운 창작 분위기는 각 예술분야에서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인류 최고의 걸작품들을 만들어내게 했다.

그리스 신화와 영웅들의 활약상이 섬세하게 그려진 아테네 도기는 지중해 세계에서 최고로 각광받는 수출품이 된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는 인류 최고의 건축 유산 파르테논 신전과 수많은 아름다운 조각 작품이 세워져 '그리스의 심장’ 자유 아테네인들의 자부심을 높여주고 애국심을 고양시켰다.

자유의 가치는 자연스럽게 개인의 존중으로 이어지고, 개성을 존중받는 개인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쳤다. 판아테나이아 제전에서는 각종 운동경기가 경합했고, 시작(詩作)과 음악 경연까지 펼쳐지는 축제의 장이 펼쳐졌다. 디오니소스 극장에서는 매년 축제와 함께 인류 최고의 시인들인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과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이 상연되었다.

저마다의 타고난 자질을 가진 개인들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각 분야에서 최고의 결과물을 창출할 수 있었다. 아테네인들은 아레테(arete, 탁월성)를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다. 그 아레테를 만들어 낸 자산의 궁극적인 에센스는 바로 자유와 경쟁(agon)이었다. 결국 아테네의 황금 문명은 자유와 경쟁이 만들어낸 셈이다.

하지만 아테네인들이 오로지 치열한 경쟁만 추구했던 것은 아니다. 자칫 인간의 지나친 욕망과 경쟁이 빚어낼 비극적 상황을 그들은 신화와 연극의 스토리로 표현하며 경계했다. 특히 자유와 평등(isonomia)의 관념을 중시하면서도 절제(sophrosyne)라는 제동장치를 두었다.

이는 사회의 발전과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폭넓게 유포된 교훈적 사유 개념이었다. “적절함이 최선이다(metron ariston)”와 같은 격언이 사회생활의 계율로 작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테네 문명이 황금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개인의 자유와 창의, 경쟁을 존중하는 기풍을 사회 전반의 영역에 뿌리내리게 한 덕분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한 사회나 국가의 발전을 위해 사회 성원 간에 충돌하는 욕망을 절제시키고 권력과 부의 형평을 만들어내는 평등과 절제의 가치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고대 아테네인들이 창안한 자유를 근간으로 한 사유체계는 3천년 가까이 숙성되면서 서양 문명의 근간이 되었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개인의 창의를 억압하는 규제는 양산되고 있고, 시장의 자생적 질서는 질시받기 일쑤다.

우리는 자유의 관념과 행동양식을 해방 이후에야 제대로 접할 수 있었다. 그것도 피부로 체득할 만큼 처절한 투쟁과 간절한 갈망의 경험은 일천했다. 우리가 아직도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를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하고 때론 방종으로 때론 규제와 억압으로 내닫는 일이 잦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자유, 평등, 법질서, 절제, 합의와 같은 숭고한 가치 관념은 단순히 교실의 학습으로 습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 속에서, 특히 인간 상호 간의 관계에서 부단히 기초적인 사유와 행동양식으로 작동되면서 익혀 나가야 할 어려운 관념들이다. 민주공화국과 자유 시장경제의 가치가 헌법에 명시되었다고 저절로 국민들의 공유가치가 되는 게 아니란 의미다.

'자유’의 가치를 연료로 활활 타오르던 고대 아테네의 황금기를 면밀히 학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유’의 가치와 이를 사회 전반의 작동 원리로 스며들게 하는 우수한 완제품을 생산하는 '자유 공장’은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되어야 한다.



* 본 칼럼의 무단 복제 및 게시를 금합니다.

칼럼니스트 소개 >>> 박경귀

인하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책과학 전공으로 행정학 박사를 받았으며, 현재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이다. 연세대학교 도시문제연구소 전문연구원(2002~2003), 서울특별시 공기업 경영평가단장(2010, 2011), 국방부 책임운영기관 종합평가단장(2011, 2013)을 역임했다. 한국정책학회 국방안보정책분과연구회 회장(2011~현재), 국방부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국토교통부 자체평가위원회 위원, 경찰청 성과평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단법인 행복한 고전읽기 이사장으로 고전 읽는 품격 사회를 만드는 일에 필생의 소임으로 매진하고 있다. 동서양 고전을 특강하고 토론하는 를 2012년부터 18차례나 개최했다. 대학생 및 청소년 독서진흥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2014년부터 격월로 공개강좌를 이어가고 있다. 《머니투데이》에 <고전의 향기>를 연재했고, 《데일리안》에 그리스 문명기행기 를, 《미래한국》, 《미디어펜》에 동서양 고전 리뷰를 연재하고 있다.

공식 블로그 : '박경귀의 행복한 세상 만들기’ www.pinepark.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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