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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 (한국경제 논설위원실 실장, 정규재TV)

(정규재칼럼) 대우패망秘史 4·끝 - 김우중과의 식사

정규재 | 2014.09.16 14:42 | 조회: 404 | 덧글보기(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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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경제신문 홈페이지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91597681


"제가 국제적 사기한이고 대우그룹이 범죄집단이었다면 어떻게 지금도 

대우가 만든 마티즈가 로마 시내를 가장 많이 질주하고 있고, 전 세계 바다 

위를 대우가 만든 수백 척의 배들이 항해하고 있으며, 대우가 건설한 

아프리카 중동의 그 많은 고속도로 위로 차들이 질주할 수 있겠습니까"


김대중 정권이 기업들을 죄수 딜레마 게임으로 몰아넣은 것이 빅딜

삼성그룹의 자동차·전자 빅딜 거부가 대우 자금난에 결정타 날려

기업가 멸종 시대에 김우중 대우 회장을 기억하는 것은 의미있는 일


음모론은 복잡한 인과관계를 쉽게 이해시킨다. 그러나 신흥관료 집단의 기획 해체라는 음모론적 주장을 수용하더라도 의문들은 여전히 남게 된다. 빅딜은 과연 누구의 기획이었는지, 김우중은 결국 삼성 이건희와의 대결에서 패한 것이 아닌지, 왜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해외로 도피했는지 하는 의문들 말이다. 기업가 김우중과 정치인 김대중의 내밀한 관계도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가장 큰 의문은 역시 대우그룹 총수 김우중 본인에게 돌아간다. 김우중 회장은 과연 모래성을 쌓았을 뿐인가. 한마디로 그는 국제적 사기한이었는가. 이 마지막 질문에 이르면 평가는 극명하게 갈라진다.


김 회장이 해외 도피생활 2년여 만에 당시 경제부장이던 필자에게 보내왔던 편지는 지금도 생생하다. '죽기보다 사는 것이 더욱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참담한 문장으로 시작한 이 편지는 우리가 그에게 던지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제가 국제적 사기한이고 대우그룹이 범죄집단이었다면 어떻게 지금도 대우가 만든 마티즈가 로마 시내를 가장 많이 질주하고 있고, 전 세계 바다 위를 대우가 만든 수백 척의 배들이 항해하고 있으며, 대우가 건설한 아프리카 중동의 그 많은 고속도로 위로 차들이 질주할 수 있겠습니까.”


다소 의외지만 강만수 전 장관도 그렇게 보는 사람이다. 그는 산업은행 회장 시절 대우건설, 조선해양, 증권을 직접 경영하면서, 대우의 세계경영 현장을 세밀하게 추적한 경험을 지금도 김우중이라는 이름 석 자와 함께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강만수 회장이 세계를 돌며 대우의 세계경영 현장을 뒤늦게 재확인해나갔던 이 기억의 종합은 어느 정도는 평가자들의 합의 수준과 부합한다. 세계를 무대로 장사를 하는 상사맨들에게 어느 회사가 가장 우수한 경쟁사인지 물으면 기다릴 필요없이 대우인터내셔널이라는 답을 지금도 들을 수 있다. “그들은 지원도 충분치 않은데 정말 잘해 나간다”는 답을 듣는 것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GM으로 간판을 갈아끼운 대우차는 우즈베크 등 과거의 '대우스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차다. 대우건설은 원전 건설 경험을 온전히 갖고 있는 유일한 한국의 건설사라는 이유로 해외 매각이 사실상 금지돼 있다고 할 정도다. 대우증권은 증권계 인재의 풀이요 사관학교다. 대우그룹에 속한 기업들 중 어느 하나 근거 없이 과대평가된 기업은 없다. 그런데 그 대우가 무너졌던 것이다. 수출 애국에 청춘을 바쳤던 대우맨들은 지금까지 세계경영연구회 등의 모임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미련은 너무도 깊다.


김 회장은 선진국 아닌 중국과 동구권과 스탄지역들과 남미를 석권할 태세였기 때문에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됐더라면 개도국들이 날개를 펼친 지금 대한민국의 경제력이 차원을 달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에 “만약에…”라는 것은 없다. 대안(alternative)의 역사는 패배자의 아쉬움을 달랠 뿐이다. 대한민국 재계 1위를 꿈꾸었던 대우였으니 왜 회한이 없을 것이며, 땅을 치는 억울함이 없을 것인가. 대구의 방천시장에서 새벽 신문을 팔던 소년 김우중은 당시에도 외상으로 신문을 먼저 돌리고 돈은 나중에 받는 기발한 영업 수완을 발휘했다. 오늘날 무역금융의 기능을 고스란히 활용했던 장사꾼 김우중이었다. 그러나 장사꾼이 합리주의자, 주자학자들이 지배하는 관존민비의 시대를 살아내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관료지배를 가능하게 해준 IMF통치는 지금도 내재화돼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아직 김 회장은 78세에 불과하다. 그러나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도피생활이 길어진 것은 독일서 심장수술을 받아야 하는 등 건강이 너무 나빠졌기 때문이었다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행여 다른 사람이 볼까봐서인지 식당에서도 출입구 쪽에 등을 보이도록 자리를 잡았다. 그는 15년이나 도피와 감옥과 은둔자의 생활을 보냈다. 자세도 편치 않았다. 곤란한 질문들은 종종 잘 못 알아들었다. 새로운 단어와 문장과 논리를 이해하고 치열하게 토론하기에는 이미 고령이었다. 대통령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질문 자체를 잘 알아듣지 못했다. 예전에는 달변인 그였지만 자꾸 말이 끊어졌다. 대선자금에 대한 질문은 아예 원천 부인했다. 삼성과의 빅딜에 대한 질문은 특히 불편해했다. 그리고 갑자기 다른 약속이 있다고 말했다. 메인요리도 안 먹겠다고 했다. 그러나 화제가 바뀌고 기분이 풀리자 웨이터를 불러 다시 요리를 주문했다.


예전 같았으면 얼굴을 붉혀서라도 날카롭게 주장을 세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약속이 있어서”라고 얼버무릴 뿐이었다. 그러나 김 회장이 서둘러 자리를 뜨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화제는 선을 넘지 말아야 했다. 그는 지난 15년간 수도 없이 복기하고 또 복기했을 것이다. 화제는 기억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었다. 김 회장과의 짧은 식사 만남은 그렇게 겉돌았다. 베트남에서 한국 청년들을 무역인재로 새로 키워내는 일에 화제가 미치자 예전의 속사포 같은 언어들이 다시 쏟아져 나왔다. 100세까지만 살 수 있다면 청년 무역인재 100만명을 키워낼 수 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놀랍게도 그는 삼성의 이병철 회장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이병철 석 자가 먼저 튀어나왔다. 빅딜이 사실은 재계 판도를 일거에 뒤엎어버리자는 대우의 그랜드 디자인이 아니었던가를 묻고자 했지만 질문도 겉돌았고 답을 듣지도 못했다. 아니 빅딜 자체를 건성건성으로 말했다.


자동차 빅딜은 삼성 측이 먼저 제안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거짓말로 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삼성이 대우전자를 가져가고 자동차를 대우에 넘긴다는 계획을 삼성이 먼저 제안한다는 것은 당시의 사업구조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 회장은 1998년 봄 이미 쌍용차를 인수한 터였다. 3조~4조원대의 인수금융을 받고 삼성자동차를 인수한다는 전략은 남는 장사였다. 김 회장은 인수계약서를 쓰기도 전에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에 회장의 야전 집무실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그러나 삼성 실사팀은 대우전자 인수불가 판정을 먼저 내렸다. 분식회계 장부를 들고 삼성에 투항한 대우 측 임원도 있었다. 대우전자 인수작업에 참여했던 전 삼성그룹 관계자는 대우전자 분식에 대해 지금도 고개를 흔들고 있다. 시간은 대우에 불리했다.


대우 못지않게 삼성에도 충성스런 부하들이 많았다. 어떤 부하는 빅딜 반대를 내걸고 이건희 회장에게 사표까지 냈다. 삼성과의 빅딜이 성공했더라면 대우는 해체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기어이 삼성자동차를 독자 청산하기로 했고 대우의 손을 뿌리쳤다. 대우에 인수금융을 주면서 끌려갈 수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당시 정권은 이렇게 기업가들을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 게임으로 몰아넣었다. 사재 출연 등 적지 않은 출혈이 있었지만 삼성은 결국 독자 청산의 길을 택했다. 문제는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삼성의 일부 금융계열사들이 대우채를 회수하기 시작한 사실이다. 김 회장이 허리를 굽혀 이 회장의 집(승지원)에까지 찾아 간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 회장은 그렇게 하겠노라고 말했지만 그의 부하들은 달랐다. 대우는 이헌재와 강봉균의 말마따나 시장에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김우중만한 기업가는 없을 것이다. 위대한 창업가요, 신천지의 발견자요, 세계 지배의 야망을 꿈꾸었던 사람 말이다. 아니 기업 행위를 사실상 불법화해놓은 경제민주화의 관치국가에서 더 이상 무슨 큰 기업가가 나올 것인가. 대우사건은 그렇게 성장체제의 문을 스스로 닫아 걸어버린 사건 중의 사건이다. 의도와 결과는 천양지차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더는 세계를 경영할 의욕도 능력도 없다는 것인지, 이제 한국인은 세계시장 따위는 잊은 것인지를 김 회장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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