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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 (프리덤팩토리 기획팀장)

#7. 호불호가 이성을 지배하는 사회

이유진 | 2014.06.24 22:56 | 조회: 573 | 덧글보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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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視線

 

누군가를,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 봤다.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뭐라도 다 좋고 싫어하는 사람이 하는 일은 뭐든 싫은 상태. 살짝 미친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her에서 그런다. 사랑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미친 짓이라고. 이젠 증오도 그런 지위에 오른 것 같다.

 

미쳤다는 거, 이성이 마비 됐다는 거, 그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할 수도 있고 어처구니없는 선택도 가능하다. 그런 양날의 검을 휘두르는 미친 사람이 많은 덕(?)에 한국이 지금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 것도 같다. 세계에서 배를 제일 잘 만드는 나라가 연안여객선을 그토록 후지게 운영하는 구조를 가진 걸 보면.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이유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다. 본인 기준에 부합하면 좋아하고 어긋나면 싫어한다. 온갖 이유를 갖다 붙여도 실은 '제멋대로’다.

 

저 사람은 손이 예뻐서 좋아.

이 집은 음식이 맛있어서 좋아.

지하철보다 버스가 좋아.

저 사람은 목소리가 간사해서 싫어.

여긴 좁아서 싫어.

 

'내 눈’에 저 손이 예뻐 보이고, '내 입’에 음식 맛이 맞고, '내 기분’에 지상으로 다니는 차가 더 좋고, '내 귀’에 목소리가 언짢게 들리고, '내 몸’에 좁게 느껴진다.

 

좋고 싫은 이유가 별 거 없는데 어쩌라는 거밍?

하고 묻는다면 그럼 이런 이유는 어떨까.

 

저 정치인은 올바른 말을 해서 좋아.

그 사람은 개념 있는 청년이라서 좋아.

저 사람은 의리가 없어서 싫어.

그 사람은 행실이 아주 난잡해서 싫어.

 

올바른 말, 개념 있는 청년, 의리 있는 사람, 난잡한 행실과 같은 가치판단의 기준은 뭘까. 거기 객관적인 기준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습적으로 인정하는 도덕 또는 윤리의 범주가 있다고들 하지만 그 역시 지극히 주관적인 게 아닐까. 네 생각이 내 것과 요 정도는 공통으로 갖고 있을 거라는 개인들의 추상적인 기대가 모인 게 도덕의 실체는 아닐까.

 

'윤리적인 이유’를 대는 기저에는 '내가 윤리적인 사람’이라는 심리가 깔려 있는 듯하다. 누군가를 무언가로 규정하고 그것을 이유로 그 사람을 좋거나 싫다고 말하는 건 실은 자기소개에 다름 아니다. 네가 한 행실을 난잡하다고 규정한 나는 그런 너를 싫다고 함으로써 은연중에 나는 난잡한 사람이 아니라고 드러낸다. '난잡함’에 대한 정의는 각자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므로 같은 말에 다른 생각을 갖고도 얼마든지 동의할 수 있다.

 

문제는 자신의 그런 주관적인 평가를 객관적인 기준에 따른 것으로 착각한 사람들이 여론을 형성할 때 생긴다.

 

일례로 문창극 씨가 총리후보가 되자 소위 '친일’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에게 총리 자격이 없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것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으나 사퇴종용은 계속됐다. 결격사유가 사라졌는데 끝끝내 후보직에서 사퇴시키고야 말았다. 그러니 결격사유는 '친일’이 아니었다. 그의 치명적 결점은 사람들이 그를 싫어했다는 거다. 그를 지명한 대통령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여론이 이긴 거다.

 

그 사람이 총리가 되고 안 되고는 개인적으로 관심 없었다. 그의 기독교적인 역사관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사람들이 각자의 머릿속에 있는 추상적인 잣대를 '친일’이라는 단어로 끄집어내 공유하며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과정엔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랐다. 또한 그것을 주도한 게 공영방송 KBS라는 것도 소름이 돋는다. (양심도 없지. 수신료 징수 금지도 모자랄 판에 수신료 4,000원으로 인상이 웬 말이람.)

 

근래 이슈들만 봐도 그렇다. 여론은 문창극 총리 후보를 친일로 몰아세웠다가 아닌 게 밝혀졌는데도 사퇴를 종용하고, 검찰은 유병언을 못 잡으니 일가친척들까지 조선시대마냥 체포 검거하고, 기자는 세월호 '사고’를 세월호 '사건’으로 GOP 총기난사 '사건’은 '사고’라고 기사를 쓰고, 방송에선 총기난사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뚜렷한데도 가해자를 관심병사 운운하면서 개인이 아닌 사회에 책임을 돌리려 들고.

 

여기서 일관된 이유는 '그냥 싫다'는 거다. 사람이 싫고, 사고가 싫고, 군대가 싫고, 사회가 마음에 안 드는 거다. 주관적 판단을 객관화시켜 드러내는 게 습관이 됐다 .

 

싫어한다고 안 될 거 없다. 다만 싫어하는 이유로 '정의’나 '정당성’을 운운하지 말라는 거다. '정의’나 '정당성’은 각자가 부여했을 뿐이다. 그런 개인의 주관적 판단으로 형성된 여론에 법적 판단과 정책적 판단이 흔들리고 있으니, 미친 널을 뛰는데 널빤지가 따라 뛰는 꼴로 보인다.

 

양날의 검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나라에서 그들과 같이 살기 위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할 지도 모른다. 취객에게 당신이 취했다는 걸 인정하라고 독촉하는 격이니. 어쩌면 나 역시 양날의 검을 쥔 자인지도.

 

스스로가 감정에 지배받는 개체라는 걸 인정하면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는지. 본인이 좋거나 싫다고 판단한 이유가 그렇게 이성적이고 객관적이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적확하게 나온 것이라 만천하에 선언해서 공감을 받아야만, 그렇게 일이 처리가 돼야만 안도감을 느끼는 건지.

 

하아, 누군가를 붙잡아 두고 물어 보고 싶다. 옳고 그른 것과 좋고 싫은 것이 궁극적으로 뭐가 다른지, 이런 여론재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숨죽이고 사는 것 밖에 없는지를 말이다.

 

이 노래로 마음을 달래 보련다.

 

 

 

 

* 본 글과 사진의 무단 복제 및 게시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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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r (2014.08.04 19:39:44)
메일 정리좀 하다가 우연히 들어와서 읽었는데....너무 멋진 글이라서 이전 글들도 다 읽어 버렸네요. 응원할께요.^^
이유진 (2014.08.06 13:49:08)
아아 7월에 이어가지 못했는데 앞으로 분발할게요. 힘이 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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