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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

`명량` 흥행분석의 습관적 거대담론화 문제

이문원 | 2014.08.20 17:50 | 조회: 830 | 덧글보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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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 '명량'이 신기록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16일 '아바타'의 최고 누적 관객수 1362만4328명을 개봉 18일 만에 1398만8491명으로 꺾었고, 이 여세를 몰아 17일 첫 1400만 고지를 점령, 개봉 20일 만인 18일엔 1500만 고지도 달성했다. 이대로만 가면 꿈의 숫자인 2000만 명 돌파도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그 이전부터도 '명량'은 신기록의 연속달성을 보여줬다. 개봉 첫날 흥행기록 경신, 개봉 첫 주말 흥행기록 경신, 역대 최단기 1000만 동원 달성 등등. 이 정도로 경이로운 기록들이 쏟아지니, 당연히 각종 미디어나 전문가, 또는 논객들까지도 '명량'의 어마어마한 흥행 '원인'을 분석하러 뛰어들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게 진중권 동양대 교수다.

 

"영화 '명량'은 솔직히 졸작이다. 흥행은 영화의 인기라기보다 이순신 장군의 인기로 해석해야할 듯. 활은 참 괜찮았는데…"

 

그러니까 '이순신 신드롬'의 일종으로 분석한 거다. 물론 진중권 교수 외에도 이런 식으로 분석한 이들은 많다.

 

"<명량>에서 보여준 이순신에 대한 울림이 국민들의 갈증을 해소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세월호 사건이나 청문회 등 정치권에서 보여준 실망감이 컸다. 극중 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솔선수범형 리더십은 국민들이 바라는 리더상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전문기자)

 

"'명량'의 흥행돌풍에는 정부의 무능력에서 탈출하고 싶은 염원이 담긴 것이다. 2000만도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2000만 돌파하지 않길 바란다. 2000만을 돌파한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세월호 침몰 속에 갇혀있다는 이야기다. 오죽하면 영화에서 위로 받고 싶어 하겠냐"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

 

뭐 다른 분석들도 대략 비슷비슷하다. 일단 '이순신 신드롬'을 중심으로 강한 리더십에 대한 열망 등등을 읊은 뒤, 나머지 자질구레한 흥행요인들, 연기나 어떻고 연출이 어떻고 하는 얘기들을 뒤섞는다.

 

2.

 

다 좋다. 본래 흥행요인 분석이란 것만큼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 해석도 또 없다. 대중심리를 중심으로 움직여지는 판도는 그야말로 '결과를 놓고 그에 맞춰 해석'하는 방법 외에 다른 묘안이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알아둬야 할 게 있다. '명량'이 액면 흥행수치 그 자체로 워낙 절대적이고 압도적이어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지, 한국영화시장에서 '신기록'들은 근 몇 년 간 날이 다르게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단 점이다.

 

일단 올 초 등장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을 보자.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기록을 경신했다. 아니 그냥 단순 경신 정도가 아니라 수요층이 한정될 수밖에 없는 애니메이션으로선 불가능한 수치라 여겨졌던 1000만 관객을 넘겼다. 이전까지 기록은 '쿵푸 팬더 2'가 보유하던 506만2722명이었다. 배 이상 기록으로 경신한 것이다. 그때도 또 뭐 이러쿵저러쿵 해석들이 많았다. 심지어 박근혜 신드롬이란 해석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말 등장한 영국영화 '어바웃 타임'은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로맨틱 코미디 외화 흥행기록을 경신했다. 이전까진 200만 돌파도 힘들다는 게 고정적 인식이었다. 이때도 또 여러 인문학적 해석들이 숱하게 등장했다. 아버지가 사라진 시대에 아버지와의 유대 어쩌고 하는 얘기도 나왔다.

 

그밖에도 많다. 1000만 영화는 1년에 1편밖에 나올 수 없다는 통설도 2012년 '도둑들'과 '광해: 왕의 된 남자'가 나란히 1000만 관객을 넘기며 깨졌다. 이후 계속 2013년 '7번방의 선물'과 '변호인', 2014년 '겨울왕국'과 '명량'으로 2편씩 이어지고 있고, 보통 1000만 영화가 가을-겨울 시즌에 하나씩 터지는 구조란 점을 생각해볼 때 올해는 3편도 나올 수 있으리란 기대다.

 

왜 이런 일들이 계속되고 있는 걸까. 너무나도 단순하다. 지금은 영화 장르 자체가 급격히 부흥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2004년 1억3517만 명대였던 한국영화시장 총 관람객수는 2013년 2억1332만 명대로 무려 57.8% 성장했다. 당연히 한국영화 관람객 수도 8019만 명에서 1억2727만 명으로 58.7% 성장, 그리고 한국영화 개봉 편수 역시 2004년 74편에서 2013년 183편으로 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다보다 각 영화의 흥행수치 자체도 올랐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전국 관객 수 집계를 시작한 2005년, 흔히 '대박' 라인으로 불리는 전국 300만 관객 이상 동원 영화는 모두 8편, 그중 6편이 한국영화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해 이르러선 총 19편의 영화가 이 라인으로 들어섰고, 그중 14편이 한국영화였다. 150만 명 이상 '중박' 라인까지 범위를 넓혀 봐도 2005년 21편에서 2013년 42편으로 딱 배의 영화들이 안정적 수익을 확보하게 됐다.

 

이렇게 산업 자체가 어마어마한 기세로 흥하고 있으니 당연히 각 영화들의 흥행수치도 자연 올라가게 되고, 그러니 해가 다르게 흥행 신기록들이 계속 쏟아지게 되는 거다. 지난해의 신기록은 올해 경신하고, 불과 몇 달 전 새로 세워진 기록도 다시 씌어지기 일쑤다. 이를 방증하듯, '명량'이 새로 세운 개봉 첫날 신기록인 68만2720명의 바로 직전 기록은, 그 바로 전 주 '군도: 민란의 시대'가 세웠던 55만1843명이었다. 불과 보름 사이 신기록이 두 번 경신된 거다.

 

그러니 '명량'이 1500만을 돌파하든 뭐가 어떻게 되든 간에, 지금은 그 원인에 대해 딱히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시점은 아니란 얘기다. 이 정도로 영화관람이란 행동습관이 대중에 만연하게 자리 잡은 상황이라면, 어차피 모든 기록은 지극히 짧은 시간 내에도 수차례 깨지게 돼있고, 그만큼 그 한편 한편의 사회문화적 의미를 따지는 건 거의 무의미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대중은 어찌됐건 영화를 보러 간다. 영화 그 자체에 크게 끌린다기보다, 영화를 보러 간다는 행동습관에 지배돼 주기적으로 '무엇이건' 본다. 그 '무엇'이 과연 어느 영화에 낙점될 지는, 그저 시기적 특성(학생들 방학인가 아닌가), 기온 등 환경조건(비가 내리지 않는 무더위에 관객이 몰림), 해당시기의 대진운, 마케팅의 효율성 등등에 따라 움직여지는 로직일 뿐이다.

 

3.

 

"영화산업은 한 상영관에서 다른 상영관으로 관객을 이동시키는 운송업이다."

 

- 제리 브럭하이머,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4.

 

그런 점에서, 사실 '명량'의 흥행성공 이유 분석이니 하는 것들보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왜 근 10년에 걸쳐 영화관객이 이렇게까지 늘어났고, 영화관람이 이처럼 압도적인 레저 행태가 됐느냐는 점이다. 이것도 사실 원인은 분명하다. 지금은 모두가 다 지갑을 좀처럼 열지 않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취업불황 등으로 인해 대중문화상품 소비에 가장 적극적인 청년세대일수록 더 돈이 없다.

 

영화는 본래 이렇듯 불황기에 더 인기 있는 장르다. 영화만큼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오랜 시간 즐길 수 있는 레저거리도 딱히 없기 때문이다. 미국만 해도 1인당 영화관람 횟수가 가장 많았던 시절은 여전히 1920~30년대 대공황 시기로 알려져 있다. 깨지지 않는, 깨질 수 없는 기록이다. 그러다보니 이젠 이런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사라져 가던 전당포와 만화방이 부활하고 있다. 불황에 급전이 필요한 사람이 늘면서 전당포를 찾는 수요가 생겼다. 또 커피 한 잔 마시려고 해도 4000~5000원은 줘야 하는 상황에서 저렴하게 시간을 떼울 수 있는 만화방을 찾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중략)

 

만화의 인기와 함께 재등장한 만화방은 주로 유동인구가 많은 시내 중심지에서 문을 열고 있다. 트렌디한 인테리어와 함께 카페란 이름을 내걸었다. 서울 강남역 인근에 문을 연 만화카페 '살롱 드 코믹스'는 평일 저녁이나 주말이면 크게 붐빈다. 50석의 좌석이 거의 다 찰 정도다. 평일에는 150여 명, 주말에는 300여 명의 손님이 찾는다. 특히 이 일대에 손님이 많이 붐비는 시간에는 혼잡을 피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

 

시간이 남을 때 커피 한 잔보다 싼 가격(시간당 2400원)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데다 만화나 무협소설 등을 접할 수 있어서다."

 

- 매일경제 2013년 5월10일자 기사 '불황에 부활하는 전당포·만화방' 중

 

5.

 

물론 흥행코드란 거 자체를 부정할 순 없다. 시대적으로 흐르는 대중정서의 어느 한끝자락을 붙잡는다는 건 모든 문화 장르의 성공비결이다. 그러나 그런 흐름이란 한두 가지 사건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것도, 애초 급작스레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맥락 자체도 아니다. 보다 긴 호흡의 흐름이며, 어마어마한 정치경제사회적 변화가 한 번 '쓸고' 지나간 뒤에야 문화의 형태로서 표출되는 구도다.

 

당장 지난 2년 동안 1000만 관객을 끌어 모은 6편의 영화들, '도둑들' '광해: 왕의 된 남자' '7번방의 선물' '변호인' '겨울왕국' '명량' 등만 해도, 그 안에서 하나의 궤를 이루는 사회적 의미를 대체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기껏해야 강자에 시달리는 약자의 설움을 그린 한(恨)의 정서 정도? 그것조차 아닌 경우도 많고.

 

거기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당장 지난해, 아니 올초까지, 그러니까 여름시즌의 대진구도가 설정되기 전까지만 해도, 대체 '이순신 영화'란 게 1000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이 어디 있었단 말인가. '이순신 신드롬'? '박근혜 신드롬'이니 '아버지 신드롬'이니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도 없는 얘기고.

 

그러니까, 미디어나 논객들의 쓸데없는 습관적 거대담론화 놀음에 귀 기울일 필요는 전혀 없단 얘기다. 끝으로, '변희재의 청춘투쟁'에 등장하는 한 대목을 소개하겠다.

 

"학생운동권을 비롯해 우리나라 대학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거대 사고증이다. 뭔가 멋있고 대단한 것을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지나치다는 것이다. 민중, 혁명, 투쟁, 통일, 지식인, 투사, 민주에 대해서는 신물이 나도록 들어왔지만 약속시간 지키기, 술 적당히 마시기, 컨닝하지 말기 등에 대해서는 아예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이것은 단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대학의 거의 모든 조직들이 추상적인 이념이 아닌 구체적 상식을 지키지 않아 무너지고 있다."

 

뭔가 멋있고 대단해 보이는 추상적 거대담론화 놀이는 그냥 그 자체로 일종의 엔터테인먼트일 뿐, 실질적으로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건 구체적 상식을 토대로 한 비즈니스의 세계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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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groove (2014.08.20 19:10:01)
재미있는 글입니다. 추상적인 이념이 아닌 구체적 상식을 지키지 않는것은 단지 운동권 학생 뿐만은 아닌거 같아서 반성이 됩니다.
이유진 (2014.08.21 03:02:23)
명량 주인공이 최민식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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