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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

미국은 `음모론`에도 좌우의 구분이 있다

이문원 | 2014.08.28 20:48 | 조회: 654 | 덧글보기(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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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모론'이라고 하면 상당수 우익 성향 사람들은 으레 좌익진영 특유의 산물처럼 여긴다. 얼마나 현실을 인정하기 싫으면 저러겠느냐며 조소를 보내기 일쑤다.

 

그런데 음모론도 사실 알고 보면 좌우 가릴 것 없이 등장한다. 당장 우익진영에서도 희한한 음모론들 참 많다. 근래엔 '석촌호수 씽크홀은 사실 북한의 땅굴' 같은 것도 등장한 바 있고. 다만 우익진영 음모론은 우익 특유의 이성적 성품에 가로막혀 금세 사그라들기 쉽지만, 좌익진영 음모론은 역시 특유의 감성적 성품 탓에 생명력과 확산력이 강해 그렇게 되질 않을 뿐.

 

그런데 여기서 미국의 경우를 보면, 실질적으로 우익적 음모론과 좌익적 음모론 사이엔 좀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음모론을 엔터테인먼트로 승화시킨 장본인 중 하나인 미드, 즉 미국드라마만 봐도 알 수 있다.

 

일단 우익진영 음모론 드라마를 보자. 대부분 정부기관 등 공적개념이 국민들에게 뭔가를 숨기고 어마어마한 짓거리들을 하고 있단 내용들이다. 주로 우익방송 폭스TV에서 이런 음모론 드라마들을 많이 내놓는다. 전설적인 음모론 드라마 'X 파일'부터 시작해 '프린지' '엘리어스' 등등 워낙 많다.

 

그러니까 비대한 공적개념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늘 경계를 멈추지 않는 자유주의 성향 우익 대중에 어필하는 프로그램인 거다. 오죽하면 좌익 성향 뉴스위크 지(紙)에선 보수주의자들의 전형을 이렇게 설명했겠나.

 

"머리를 짧게 깎고, 단정하게 입고 다니며, 가장 좋아하는 대화 소재는 스포츠, 비틀즈 멤버들 중 가장 좋아하는 멤버는 폴 매카트니, 그리고 늘 정부가 뭔가를 감추며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들."

 

반면 좌익진영 음모론 드라마는 정확히 그 반대다. 대부분 대기업 등 민간권력에서 뭔가 어마어마한 음모를 펼쳐 세계를 지배하려 한다는 내용들을 다룬다. 여기서 공적개념인 정부기관, 그러니까 FBI니 CIA니 하는 기관의 요원들은 이른바 '착한 편'이다. 거대 민간기업의 음모를 파헤치고 정의를 실현하는 역할이다. CBS 등 좌익 성향 방송사 드라마들이 이런 내용을 많이 담는다. '카오스' 등 정부기관 역할을 강조하는 드라마들이 많다.

 

뭐 당연한 얘긴데, 좌익진영의 기본 모토가 '착한’ 거대정부의 컨트롤이다 보니, '악한 민간재벌'을 쳐부수고 그들의 탐욕이 빚어낸 음모들을 파헤쳐 분쇄하는 '착한 공적개념'의 인상을 계속 남기게 되는 것이다.

 

2.

 

그런데 여기서 한국의 실정을 돌아보면, 정말로 뭔가가 잘 들어맞질 않는다. 한국은 이런 식 좌우 음모론 개념이 통용되지 않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건 비대해진 공적개념 자체에 대해 경계를 내비치는 쪽이 없다. 그저 '우리 편'이 정권을 잡으면 무조건 공적개념이 하는 일은 옳은 것이고, '너희 편'이 정권을 잡으면 그때부터 무조건 비판과 감시에 들어간다. 비대한 공적개념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엔터테인먼트 상품은 아예 존재하질 않는다.

 

그리고 민간 기업에 있어선 두 가지 개념밖에 없다. 우익진영의 경우 기업과 기업인 자체를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이고, 좌익진영에선 대기업은 악(惡)-중소기업은 선(善)이란 식 프레임, 또는 기업운영 행태가 자신들 비전과 세계관에 부응하느냐 아니냐로 '착한 기업' '나쁜 기업' 따위 애매한 프레임을 작동시키고 있다. 그리고 대개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대기업에 대한 동경과 비판을 동시에 담는 식으로 대중의 복잡한 심리에 대응한다.

 

그러니까 여긴 결국 우리 편 이겨라 네 편 져라 식 스포츠경기 개념에 불과하단 얘기다.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세계관, 사회관은 거의 없다.

 

현 정권이 자기가 뽑은 정권이건 아니건 꾸준히 비대한 공적개념을 경계하는 미국 우익 대중, 그리고 이른바 '착한 기업'이건 아니건 무조건 거대화 되는 기업을 두려워하는 미국 좌익 대중 정서와는 전혀 다르다.

 

3.

 

확실히 한국에선 이데올로기 개념이란 게 좀 기묘하게 들어와 있다. 대중의 기질적 습성이나 철학적 고민이 자연스럽게 배 들어간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수입'된 형태라 그렇다.

 

한국에서 자연스러운 구분이란 건 일단 종북과 반북, 여기가 최대 지점이고, 나머지는 다 이리저리 복잡하게 뒤엉켜있다. 파시즘적 요소도 끼어들어오고, 맑시즘 역시 세력상으로 이상하게 주체사상 부류와 얽혀 첨예하게 꼬여있다. 그래서 우익 음모론의 95% 이상이 죄다 북한 관련인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이런 상황에서, 만약 세월호 사건 관련으로 음모론 드라마나 영화 따위가 만들어진다면 과연 어떤 모습이 될지 생각해보자.

 

만약 좌익진영 컨트롤로 만들어진다면, 아마 100% 정권과 정부기관의 음모론으로 몰고 갈 것 같다. 왜냐. 이 사건은 하여튼 우익정권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우리 편은 좋은 놈, 너희 편은 나쁜 놈. 뭐 미국식 좌익 음모론이라면 어느 정권이건 간에 철저히 청해진해운이란 기업을 중심으로 부패한 거대 민간권력의 음모에 집중하겠지만.

 

반대로 우익진영 음모론이라면, 딱히 음모론이랄 것도 없이, 그냥 청해진해운에 초점을 맞춰 모든 비리와 음모를 파헤치려는 방향으로 갈 거다. 사실 그게 더 정상적인 사고에 가깝겠지만, 하여튼 여기도 기본적으로 우리 편 좋은 놈 너희 편 나쁜 놈 정서가 없다고 보긴 힘들다. 물론 이 역시도 미국 같았으면 어떻게 해서든 공적개념의 음모란 개념을 넣어 엉뚱하게 파헤치려 했을 테지만.

 

한국은 확실히 신기하고, 어색하며, 어딘지 부조리 코미디 같은 구석이 있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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